메르스 관리에 헛점이 많이 노출된 후, 게다가 현 정부 특유의 윽박지르기까지 거들고 나니 감염병 관리에 정부로부터 기대할 것이 없다는 인식이 퍼지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런데 시민들이 기대를 접고 스스로 해결책을 찾는 순간에 크나큰 재앙이 닥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 같다.
인권, 알권리, 정부의 투명성 같은 (내가 평소에 강조해 왔던) 가치는 감염병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잠시 유보해야 할 것이다. 이런 권리들의 근거가 되는 건강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비유는 부담스러우나 반쯤 전시상황인 셈이다. 그래서 지금 시민들이 정부에게 기대해야 할 것은 다른 무엇보다 효율적인 감염병 통제다. 그리고 기꺼이 협조해야 한다.
효과적이고 신속한 치료법이 알려지지 않은, 그래서 의료시설 내에서 대증요법을 취해야 할, 신종감염병 대처에서 핵심은 병원체를 (솔직하게 말하면 감염병을 확산시킬 수 있는 환자나 잠복기 등… 사람을) 가두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권위를 잃는 것은 이 사람들을 시설에 (강제로) 모으고, 필요한 치료를 제공하는 일을 심각하게 어렵게 만든다는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다.
권위없는 정부에 현재 시민들은 특이한 요구를 하고 있다. 어느 병원에서 환자가 발생했고, (아마 조금 더 나가면 수와 진료경과까지 요구할까 걱정이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정보를 공개하라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쉽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감염병 통제에 도움이 된다면 공개하고, 그렇지 않다면 공개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판단은 방역전문가들이 하라)
공개하든 공개하지 않든 정부가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위협을 느낀 시민들이 도움을 받을 경로를 만들어 두라는 것이다. 공공의료기관이 할 일이다. 그리고 1차의료기관 등 의료인의 협력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공공의료기관이 위기에 대처할 용량(capacity)이 되는가? 일선의료인들이 위험을 감수해 가면서 정부의 눈과 손이 되어 줄까? 의료인들의 신뢰는 어떻게 끌어내려 하나?
이미 이런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프로토콜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껏 잘 해오지 않았나? 이 프로토콜을 시민들과 소통하고 개선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없다면? 그땐 정말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