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간 정의

세대간 정의라는 개념이 최근 회자되는 모양이다.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달라는 ‘노동개혁’ 주장과
투표소에서 1번밖에 모르는 노인들에게 애써 일한 것을 퍼줘야 되는 이유가 뭐냐는… 둘 다 노인과 젊은이들의 대결 양상이다.

이 대결에서는 노인들이 가져가는 것은 젊은이들이 빼앗긴 것이다. 이 논리를 정당화하려고 여기에 이상한 이론을 수입해다 덧붙인다. 존롤스가 이야기 했다는 intergenerational justice다. 정말 존 롤스가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

미안한데 이 문제를 체계적으로 살펴보았던 롤스도, 세대간정의의 논쟁을 시작했던 파핏(Parfit)도, 분배문제의 대가 배리(Barry)도 우리의 논객들이 펼치는 방식대로 세대간 정의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사람들이 이해한 대로라면 현재를 사는 사람들은 나이가 많든 적든 같은 세대다. 즉 세대는 나이로 묶이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을 포함하는 것이다.

굳이 우호적으로 설명하자면 세대간 정의를 “동시간대 세대간 정의(intratempral, intergenerational justice)”와 “시간차 세대간정의(intertemporal intergenerational justice)”로 나눌수도 있겠다.

이 구분 내에서 동시간대 세대간정의는 복잡하지 않은 분배문제다. 일하는 세대가 만들 수 있는 자원을 각 연령대별로 어떻게 나눌 것인가. – 이걸 복잡하게 만든 것은 없는 예산 끌어다 수당을 만든 그녀다-의 문제일 뿐. 노인에게 가야 할 예산은 일부 젊은이들에게 돌아가야할 몫이다. 이 문제는 분배의 문제고, 분배는 정치의 본질이다. 근로자들이 노인들에게 어떤 빚을 져서 갚는 게 아니라 동시대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서로를 돕는다는 말이다.

거창하게 끌어다 쓴 롤스의 논의는 미안한데 시간차 …, 바로 두번째 정의다. 그리고 여기에는 복잡한 이론이 있어 담기어렵다. 다만 오늘 이야기 하려 했던 것은, 지금 세대간 갈등은 어떤 윤리적인-당위적인 요소가 담긴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세대간의 갈등이 아니라 증세를 통해 풀어갈 문제라는 것이고, 나이들었고 지금 일하고 있는 세대가 미래의 세대에게 어떤 빚을 지고 있다고 우길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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