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져야할 부조리 – 죽음 – 동정 – 책임질 사람들의 침묵 – 동정없는 비난 – 잊혀짐…
억울한 죽음이 반복된다. 책임지는 사람도, 용서를 구하는 사람도 없어 억울하지만 죽은 것이 억울하다. 멀쩡히 먹고 다니고 싸우고 사랑해야 할 사람이 죽었다.
이런 죽음이 어떻게 없겠냐고 누군가 말한다. (심지어 억울한 죽음마저도) 통계에 불과하다라는 말이겠지. 석가모니 부처님도 (비록 타인의 죽음이겠지만) 죽음이 없는 삶이 없다고 말씀하셨단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런 죽음과 살아남은 이들의 고통을 슬퍼하셨다. 함께 고통받는 모든 존재들의 고통을 불쌍히 여기셨다. 부처님은 통계를 들먹이는 자들, 나라도 살아야겠다고 지껄이는 자들, 동정없는 자들과 같은 의미에서 죽음이 일상이라는 말을 하신 것이 아니다.
모든 죽음은 상처를 남긴다. 그 상처는 시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누군가 나와 꾸벅 절하고, 돈을 쥐어준다고 낫지 않는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 억울한 죽음이라면 더욱더.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그 이들의 삶을 더 생생하게 살려내는 일이다. 그리고 남아 있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 일이다. 그러나 완전히 잊혀질 수도 없고, 그때마다 아플 것이다. 그게 우리 먼저 떠난 이들의 억울한 죽음에 조금이라도 동참하는 일이다.
한가지 더, 동정하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세상이, 그 사람에게만 발견되는 진리가 있다. 동정할 수 없는 인간은 병든 인간, 하나님이 주신 그분의 형상을 지워버린 반역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