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구독하는 블로그에는 신학교(Trinity International University, TIU) 에서 운영하는 생명윤리 블로그도 포함되어 있다. 이 블로그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논문이 하나 있었는데 새로운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탄소 배출량이 증가해서 결국 환경에 부담이 된다는 내용의 논문이다. 논문의 결론은 개인은 환경에 미치는 부담을 고려해서 출산을 결정해야 한다는 다소 윤리적인 내용이었다.
TIU 블로그는 논문이 출산을 도덕적으로 해를 입히는 행위로 간주한다고 하여 우려를 표한다. 사람 생명의 측정할 수 없는 가치(the immeasurable value of a human life)는 말 그대로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측정할 수 있는 탄소배출량보다 가볍게 여겨진다는 것이다. 블로그는 아이가 태어나는 일이 좋은 일이라는 입장(natalism의 입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영국의 철학자 Derek Parfitt은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아이가 태어나는 것이 좋고 아이의 수가 많을수록 더 좋다면, 아이들이 형편없는 환경에 처하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가?” 우리 직관은 그렇지 않다고 답하는 것 같다. 아마 신중한 답변은 “일정한 생활 수준이 유지될 수 있다는 조건 아래서 인구가 많을수록 좋다” 정도가 될 것 같다.
다음 질문은 이것이다. 일정한 수준은 어떻게 정할 수 있을까? 탄소배출량과 지구온난화는 생활수준에 얼마나 심각한 위협인가? 어떤 환경주의자들은 인간없는 세상을 상상하고, 어떻게든 인류가 – 집합적으로- 산아제한을 하자고 주장한다. (인간없는 세상. 앨런 와이즈먼) 이 주장이 심한 것 같은가? 아이가 무조건 축복이라는 농경시대 관습은 심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