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일부터 5일까지 보건복지부 생애말기돌봄계획수립 연구의 일환으로 호주 빅토리아주 멜버른을 다녀왔다. 연구실 동료들과 복지부 담당자가 함께한 짧은 일정이어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거나 펭귄 서식지를 방문하는 호사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걸 사람들로 채웠다고 하면 억지일까?
첫날 오후 VAD Care Navigator(Voluntary Assisted Dying Care Navigator) 팀을 만나러 St. Vincent의 Peter MacCallum 센터로갔다. 빅토리아를 포함해서 호주의 생애말기돌봄 제도는 UK와 비슷한 시기 정립되기 시작했으나 이후 제도의 정립, 운영과 개선 작업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점진적으로, 그러나 분명하게 진행되었다. 사람들은 호주의 VAD가 법으로 존재한다는 것에만 관심을 갖곤 하지만 방문의 목적은 입법에 이르는 과정이었고, 제도화 이후 지속적으로 의견을 수집하고 반영하는 전력에 관한 것이었다. 이날 방문한 센터는 정책보다는 실행 조직이었는데 이들이 이해하고 있는 제도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미 시행 중인 VAD 제도를 환자 돌봄의 수준을 높이는 방식으로, 환자에게 가능한 선택지를 추가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결정을 받아 적는 것이 아니라 결정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상의하는데 집중하는 것을 들었다- 7년간 환자와 현장의 경험으로 다듬어졌다고 말했다. 자격을 얻은 사람의 약 3분의 1이 끝내 약물을 쓰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오래 남는다. 그들에게 VAD는 죽음의 선택이 아니라 남은 삶을 안정시키는 통제감이었다.
이튿날 주에는 빅토리아 보건부(Department of Health)와 정부와 밀접한 관계에 있지만 독립한 조직인 Safer Care Victoria를 방문했다. 보건부의 생애말기돌봄 정책 유닛이 우리를 맞아 주었고 이들은 완화의료, 사전돌봄계획(ACP), VAD를 따로 떼지 않고 하나의 생애말기 돌봄 체계로 묶어 설명했다. 반복된 원리는 세 가지였다. 문서보다 대화가 먼저이고, 치료가 줄어도 돌봄은 지속되며, 환자뿐 아니라 의료인도 보호받아야 제도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우리를 맞아주었던 책임관(Peter Mac에서 완화의료를 담당하던 나이 지긋한 임상의사 Mark Boughey가 생애말기돌봄을 총괄하는 디렉터로 옮긴 것도 인상적이었다)은 우리를 다른 연구자, Queens’s University에서 ELLC라는 프로그램 (임상의사들에게 생애말기돌봄관련 법률 교육을 제공)을 총괄하는 동료에게 이렇게 소개했다. ‘여기 한국 동료들이 우리가 10~15년 전 고민했던 문제를 다루고 있어’
같은 날 오후에 일차의료학회(RACGP)의 생애말기돌봄 연구모임 책임자와 면담을 할 수 있었다. 오후에 온라인으로 만난 RACGP 일반의들은 좀 더 솔직했다. 법과 전자기록, 수가가 다 갖춰져도 의사와 환자가 서로 먼저 말 꺼내기를 기다리는 “상호 대기”는 여전하며, 전국 단위 모니터링이 부족했던 점은 자국의 아쉬움이라고 했다. 비슷한 고민이 있다는 것이 위로였다면 문제해결을 위해 학회가 교육과 자격관리(한국에도 있는 연수평점제도를 활용해서)를 통해 상황을 개선하고 있다는 점은 숙제로 남겨졌다. 이런 순간은 내가 임상의사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마지막 날 Monash Bioethics Centre에서는 두 WHO 협력센터가 학생교류, 정기 웨비나, 공동연구로 이어질 협력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학생들은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 한국 대학의 일개 연구진을 부총장까지 나와 메인 회의실에서 행사를 해 준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hospitality일터, 그러나 부담도 남았다. 연구자들을 만나니 기관을 찾아다니며 느끼던 부담이 조금 덜어졌다.
우리를 개인적으로 맞아준 사람들이 있다. 첫날은 Rob Sparrow와 Justin Oakley 교수가, 둘째 날은 연수와 있는 송인규 교수가 (장소 소개로- 이방인에게 밥먹을 만한 곳을 소개해 주는 것은 꽤 큰 도움이 된다), 마지막 날은 이제는 큰 형님 같은 Eshan Gooshki 교수가 페르시안 쿠진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한국의 연명의료결정이 사망 며칠 전에 몰리는 구조를 바꾸는 일은 서식 하나를 고치는 일이 아니다. 지침, 교육, 수가, 기록, 내비게이션, 그리고 공론화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멜버른은 그것을 20년 가까이 해 온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