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의 문제: 양심적 거부와 권한의 남용 사이에서

 

켄터키의 시골, 어느 공무원이 종교적인 이유로 동성 커플에게 결혼증명서를 발급하지 않다가 감옥에 갔다. 논쟁이 되어 버렸고, 판사는 더이상 논쟁에 휩싸이고 싶지 않았는지 앞으로는 발급하라는 명령을 덧붙여 석방했다.

킴 데이비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녀는 권한을 남용한 것이고 –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다른 이들에게 강요한 셈이며, 당연한 법적 권리를 부정한 것이다- 그래서 벌을 받은 것이다. 물론 양심에 따른 행동이니 다시 반복될 것이고.
문제는 이렇게 양심적 거부(단어 사용에 얼마나 많은 가치가 들어가 있는가! 양심이라는 말은 정당하다는 함의를 갖는다. 정당한지 나는 잘 모르겠다)를 할만한 사람에게 어떤 행위를 요구할 때, 아니면 거부자가 유일하게 권한을 가진 사람일 때 발생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내 자유는(킴 데이비스의 경우는 의무라고 느낄 것이다) 타인의 정당한 권리 앞에서 멈춰야 한다. 자신을 civil servant라고 규정하고 그것을 자랑스러워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찬성했든 반대했든 공적으로 정해진 규정에 순복해야 하고, 더더욱 타인을 지켜야 한다. 이 점에서 그녀는 잘못했다. 이것은 (재량이 있었다면 ) 권한 남용이고 권한이 없었다면 불법이다.

권한 내에서 타협하는 것이 우선이고, 해결책 (공화당을 지지하든 의회 앞에 가서 피켓 시위를 하든)을 동시에 찾아야 하겠다. 그것이 어렵다면, 그리고 문제가 심각하고 피해갈 수 없을 때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이 양심적 거부일 것이다. (양심적 거부보다 조용한 방식은 사직인데, 이렇게 되면 이슈가 되기 어렵다.) 그만큼 심각한 문제, 그래서 다른 이들의 양심에도 공명을 일으켜야 하는 상황, 이를 위해 희생도 감수할 각오가 있을 때 양심적 거부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킴 데이비스의 처지가 그랬는지. 이런 희생을 간디나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경우에 비교할 수 있을까?)

생명윤리 영역에서 양심적 거부는 낙태나 안락사 등 논쟁적인 의료행위를 주로 종교적인 이유로 시행하지 않는 의료인들의 행태를 지적할 때 사용된다. 그리고 권고안들은 다른 의료인을 찾아주도록 하고 있어서 대개 (다른 의료인을 찾을 수 있으니)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해소된다.
하지만 의료가 공적인 활동이 될 때, 예를 들어 예방접종같은 공적인 행위를 수행하는 공공기관에 고용된 의사의 행위라면, 그는 법을 지켜야 한다. 이런 공적인 영역은 점차 확대될지 줄어들지 예측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