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은 도덕경 70장
”내 말은 이해하기 심히 쉽고, 행하기 쉽다. (그러나) 천하는 능히 알지 못하고 행하지 못한다.
(이는) 내 말에 원칙이 있고, 내 법에 권위가 있으나, 이를 알지 못하기에 사람들이 나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나를 아는 자는 드물고, 그래서 나는 귀하다.
하여 성인은 비록 거죽 옷을 입어도 귀한 옥을 속에 품었던 것이다”
吾言甚易知 甚易行 天下莫能知 莫能行言有宗 事有君 夫唯無知 是以不我知知我者希 則我者貴是以聖人被褐懷玉
이런 선언, 나(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리석다는 선언은 여러번 들었다.
(나 역시 오늘도 생명윤리에 관한 일부의 행동을 SNS에서 접하며 왜 이리 무지한지 궁금해 했다. 과대망상이 없음에도)
그런데 이런 선언은 공정한가? 그저 푸념아닌가? “너희는 모르고 있다. 앎이 너희를 구원할 것이다. 내 말을 아는 것은 진리를 아는 것이다.”
(그렇다. 진리를 아는 것은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진리가 무엇인지에 달려있긴 하다만.)
이런 선언을 하는 이들의 주장은 결국 상대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 말이 참이라는 것이다. 좋다. 많이 양보해서 그들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고, 그런데 대부분이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보자. 이들은 무시하는가? (어떤 이들은 어떤 종류의 무지는 의도적이라고 비난한다.) 아니면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인가? 만약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소쥐 진리를 품은자들의 비난은 대상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의심하는 것이 있다. 만약 대부분의, 정상적인, 사람들이 인정하지 못하고 받아들이기 거부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어떻게 참이 될 수 있는가? 게다가 그것이 형이상학적인 무엇이 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