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단체 – 이해단체

감사한 추천을 받아 몇몇 단체에서 활동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인정은 동기부여도 된다. 그래서 생긴 해프닝 하나.

지난 주말 보건복지부가 김세연 국회의원의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권리에 관한 법안”에 관해 기독교생명윤리협회에 요청한 의견서를 살펴보다 이런 관행이 못마땅해졌다. 이런 감정은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신호가 아닐까? 다행인지 협회는 그 못마땅함의 근거가 무엇인지 내게 물었고, 정리해 보니 대강 이렇다.

*** 간사님, 협회 임원 여러분,

제 걱정을 진지하게 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메일의 걱정은 사실 의견서의 내용에 관한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 우리 단체의 관점을 반영하는데 있어서 여러 임원들의 견해를 묻고 상의하는 절차가 너무 간략하게 처리되지 않는거 하는 우려를 표한 것으로 이해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제기한 문제는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충분한 의사소통의 시간이 있었는가? 가능한 문제를 충분히 검토하였는가? 우리 단체가 합의한 바 있는가, 혹은 의견의 일치를 이루고 있는가?
기본적으로 입법 과정에서 의견을 물을 때, 단체의 찬성/반대를 묻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 단체에서 논의한 바, …… 의견이 있었다” 정도로 완곡하게 사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렇게 표현해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충분히 긍정적/부정적 뉘앙스를 파악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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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참에 제 견해를 말씀드리는 것이 문제제기한 사람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결과의 문제가 아니라 협회에 의견을 묻는 관행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단체/기관에 속해 있는 모든 성원이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가정 자체의 문제입니다.
입법 과정에서 이해단체의 견해를 묻는 경우가 있는데, 이해단체는 비교적 입장이 분명할 터이나 우리 협회가 이해단체로 분류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번 의견서는 전문가 단체의 견해를 묻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의견의 일치를 구하기 위해 엄격하게 접근할 필요는 없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협회의 의견서가 어떤 법적/윤리적으로 심각한 책임을 부과할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전문가 단체의 의견을 며칠 사이에 정리하라는 태도가 정당할까요? 임상의사, 법률가, 목회자, 철학자 모두가 자신의 관점에서 연명의료의 문제에 접근하고 그 과정에서 사뭇 다른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의견을 한번에 정리하라는 그 질문 자체가 합리적인가요. 아마 우리 협회가 보낼 답변은 “협회는 다양한 관점의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런 구성 상의 특징으로 인해 협회의 단일한 의견을 제출하기 어려우며, 본 의견서는 협회의 공식 입장이 아닌 임원들의 논의 결과임” 정도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런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의견서의 내용은 자연스럽게 그 수준이 유지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미 우리 의견서는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일학 드림

PS. 차제에 협회가 자주 듣는 질문들에 기본적 입장을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오랜 시간이 걸리고 감정적/육체적인 노력도 요구될 것입니다만 신속한 의사소통과 업무진행을 위해서는 이런 작업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작업에 관한 연구비를 신청할 수도 있겠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