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als of Internal Medicine 8월 15일 자에는 clinical reflection 시간에 있었던 대화를 다룬 에세이가 실렸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용서”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 한 학생이 의사들만 알고 있는 치부가 드러냈다.
(마취되어 의식을 잃은 환자를 성적으로 모욕하던 지도 전공의가) “내게 윙크하며 웃었어요” … “너도 웃었니?” … “예, 웃었어요. 어떻게 했어야 했지요?”
모두가 당혹스러워할 수밖에 없는 순간에, 선생은 학생이나 전공의를 비난하지 않고 자신의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 해 준다. 그래서 에세이의 제목은 “우리 가족의 비밀(Our Family Secrets)”이다.
학생들이 실습하는 병원은 의사들의 성취와 영웅심이 과장되어 드러나는 공간이고, 학생들은 심각한 긴장감을 어떻게든 극복해야 하는 상황에 젊은이의 치기, 인종적/성적 차별의식 이런 것들을 품은 채 들어간다. 이 상황에서 상급자를 쳐다보고 흉내내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같을 수 있다. 그리고 당혹스러운 순간에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모를 경험부족이 학생들을 괴롭힌다. 성찰시간을 포함해서 학생들은 선생에게서 이 곤경을 헤쳐나갈 무엇을 얻으리라 기대하지만 그들도 실은 어찌할바를 모르는 상황.
선생은 학생들에게 왜 그랬을지 설명(하고 정당화) 해 줄수도 있다. 아니면 행위의 비윤리성을 지적하고, 국가위원회니 발표한 성희롱 예방법을 가르칠 수도 있다.
윤리선생은 그렇게 해서 학생들과 자신을 분리하고 도덕선생으로 전락한다. ‘답은 알아요. 그 답을 어떻게 실천할지 모르는 거에요’라는 학생의 말에 화살맞은 사람마냥 강의실에서 도망치고.
학생들과 이 순간에 공감해 주는 것은 어떨까? 그들의 괴로움을 후회를 나도 겪었다고, 나도 혹시 당신들에게 그런 어려움을 주고 있지 않은지 물어볼 수 있을까?
그래서 뭐가 달라질 거냐고? 당장 무엇을 바꾸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도덕적 십자군이 되라고 학생들을 떠밀어야 하나? (홍위병과 십자군이 무엇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나?)
그렇게 바꿀 수 없으면 윤리학자는 왜 학교에 두었는지 물을수도 있겠다. 그건 나도 궁금하다. 왜 윤리학자를 두었지? 같이 고민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안될까? 그렇게 그 순간을 견디고 자신은 반복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과정에 증인 되는 것이 선생인 윤리학자의 역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