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계급, 병

1.
강남에서 여자라서, 쉬운 상대여서, 한 사람이 찔려 죽었다.
그 범인은 여자들에게 무시당한 것이 화가 나서 아무나 죽이고 싶어서 그 여자를 죽였다며 자신도 보호하지 못하는 발언을 했다. 양심도 없는 것 같지만, 자신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모르는 것이다.
그는 불우했다. 언제 발병했는지는 아직은 모르나 늦어도 이십에 초중반에 시작된 병 때문에 시작할 기회도 얻지 못했으리라.
정신과가 고약한 것이, 증상이 문화적으로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 불우한 남자의 여혐은 (정말 ‘여혐’ 맞아? 이 행위를 해석하는 여혐들이 있는 것은 아니고?) 여자를 대상으로 보는 시선의 반영일 수 있다. 죽은 여성은, 희생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가해자로 지목된 못된 남자도 희생자다. 그렇게 되면 누가 가해자냐고 묻는 이가 있을 것이다. 정말 가해자가 구체적으로 존재해야 속이 편하겠냐? 그럼 나는 괜찮다고 다릴 뻗고 잘 수 있겠나?

2.
나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 달려오는 차를 무서워하고 싶지 않다. 솔직히 걸어서 다니기엔 우리 길은 안전하지 않다. 오늘도 어제도, 조금만 생각하면 남자 운전사만큼 여자 운전사도 보행자에게 무자비하다. 예컨대 남자도, 여자도 핸들을 쥐면 혐오스러운 것이 똑같다. (여자가 남자를 배운 것이 아닌가)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다.
무례한 것, 상스러운 것이 남녀의 차이가 있나? (된장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남자도 그런 종류가 있다. 이걸 먼저 말하겠다) 공공장소를 구별못하고 큰 소리로 통화하는 데 남자 여자가 다르던가? 조금만 권력이 있으면 오만 패악질 하는 것이 남녀가 다른가? (여성이, 여성이라는 젠더 때문에 이런 폭력에 더 많이 노출되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젠더와 무관하지 않지만, 일차적으로는 여성이 사회적으로 낮은 계급에, -추가로 사람을 직접 만나는 자리에- 있기때문이다)
예컨대 우리 사회는 타인을, 특히 물리력뿐 아니라 권력에서 소외된 이들을, 권리를 가진사람으로 보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사회가 구조적으로 악한 것이고 그래서 자꾸 희생자가 나온다. 주로 여성들이 그 희생자다. 남자도 종종 희생당한다.

3.
남자도 희생당하니 이번 반응이 호들갑스럽다는 말이 아니다. (여자라는 구체적인 특징을 가진) 인간으로 시각을 넓히자는 말이다. 소외당하고 피해를 입지만 문제 해결을 요구할 수단을 갖지 못한 사람으로 이해하고, 이들을 구하기 위해,  사회가 되어진 이 모양 이 꼴이 대적할 악이라는 생각하자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성적 폭력을 이해하자는 말이다. 남 – 녀의 프레임이 아니라. (누가 이런 프레임을 제기하고 왜 낚이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4.
칼을 들고 희생자를 물색했던 그 남자로 돌아가자. 그이가 치료받지 못하는,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는 병자였다는 점을 생각하자. 망상이, 망상의 해결이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틈을 따라 지표면으로 흘러 나왔음도 생각하자. 그가 어떤 벌을 받을지 모르겠다. (나는 우리 법원이 일관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 해본 적 없다. 특히 성이 관련되면)
그러나 나는 그에게 치료 기회가, 재활의 기회가 제공되길 조심스럽게 기원한다. 가해자를 희생자로 둔갑시키는 궤변이 아니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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