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보다 나쁜 것이 있는가?

경험의 종결때문에 죽음이 나쁘다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살아 있어도 죽음과 다름 없는 상태가 있다. 둘째 죽음과 다름 없는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에게 나쁜 일이 닥친다면, 그 사람은 죽음보다 못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셋째 어떤 사람이 신체적 생명의 유지를 포기하고 동시에 고통이나 불편함, 경험없는 생존도 함께 포기한다고 할 때, 그 사람이 더 나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 경험이 없는 상황
첫째, 죽음과 다름없는 상황이 있다. 앞에서 살아 있어서 좋은 것은, 긍정적이거나 긍정적인 미래를 기대할 수 있도록 하는 경험 때문이라는 점을 살펴 보았다. 그리고 경험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한, 뇌가 담당하는 이성이나 감성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 뇌사 상태가 되어, 혹은 뇌의 기능 일부만이 유지된 지속적 식물 상태가 되어, 이성과 감성 기능을 잃은 채 껍데기와 같이 된다면? 그 사람에게는 살아 있어서 좋은 점이 없어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 있는 사람의 생명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생명이 그 자체로 좋다, 혹은 어떻게든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인간의 의무라는, 증명되지 않은, 주장뿐이다. 생명의 좋은 점 – 또는 죽음의 나쁜 점-을 바탕으로 하는 주장은 아닌 것이다.

# 죽음보다 더 나쁜 상황
둘째, 죽음과 다름 없는 상황에서 오로지 나쁜 경험만이 계속된다면? 여기서 나쁜 경험이란 통증이나 불편함, 그리고 비인격적 대우와 같은 것으로 이를 경험하는 사람의 처지를 더 낫게 할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어떤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을까? (암이든 노령으로 인한 쇠약함이든) 죽어가는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할 경우 그 성공률은 극히 낮다. 반명 심폐소생술로 인한 고통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이미 의미있는 경험 없이, 죽어가는 환자에게 심폐소생술로 인한 고통을 더하는 것은 죽음에 (무엇이든 더할 수 있다면) 더 한 상태로 몰아가는 것이다. 또는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불필요한 고통만을 더하는 것인데, 이것은 사실 죽음을 앞두고 경험을 상실했다는 가정보다 더 나쁜 행동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해 둔다.

# 선택의 합리성
셋째, 자신에게 닥칠 나쁜 일의 연속을 예측한 어떤 사람이, 이런 경험 없이 죽음을 맞겠다고 판단하고 불필요한 조치를 거부한다면 이런 거부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조금 더 나아가 죽음을 예상하고 내린 이런 결정을 존중하기 않는 것은 불필요한 경험만을 더하는 악행이다. 이 주장에는 만약 극심한 고통을 예측하는 사람이, 죽음이 닥치는 시점을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 등의 행위를 통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함의점이 있다. 이 점은 추후에 살펴보자.

지금까지 전개한 주장은 뇌사 상태나 지속적 식물 상태를 죽음으로 정의하지 않고도 이런 상태에 놓인 개인의 선택을 존중할 수 있는 이유를 찾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비록 죽음이란 어떤 추측도 거부하는 극단적인 상황이지만, 죽음을 나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아 내고 나니 죽음보다 더한 상황도 있음과 죽어가는 사람을 돌봄에 있어 경험에 집중해야 할 필요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죽어가는 사람의 경험에 집중한 돌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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