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12장 아이의 죽음을 두고 다윗이 기도하고, 받아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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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훼께서 우리야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아 준 아이에게 중병을 내리셨다. 다윗은 식음을 전폐하고 베옷을 걸친 채 밤을 새우며 어린것을 살려 달라고 맨땅에 엎드려 하느님께 애원하였다. 늙은 신하들이 둘러서서 일어나라고 했으나, 그는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더불어 음식을 입에 대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기는 마침내 칠 일만에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신하들은 다윗에게 아기가 죽었다는 것을 차마 알리지 못하고 수군거렸다. “아기가 살아 있을 때에도 우리 말을 듣지 않으셨는데, 아기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려 드리면 무슨 변이 생길지 모른다.” 그러나 다윗은 신하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는 아이가 죽었음을 알아 채고 아기가 죽었느냐고 물었다. 신하들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다윗은 땅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목욕을 하고, 몸에 기름을 바르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고 야훼의 전에 들어가 예배를 올렸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 와 음식을 차려 오게 하여 먹기 시작하였다. 신하들이 물었다. “아기가 살아 계실 때에는 잡수시지도 않고 아기 생각만 하며 우시더니, 막상 아기가 돌아 가시자 일어나셔서음식을 드시니 어찌 된 일이십니까?” 그가 대답하였다. “그 애가 살아 있을 때 굶으며 운 것은 행여 야훼께서 나를 불쌍히 보시고 아기를 살려 주실까 해서였소. 아기가 이미 죽고 없는데 굶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내가 굶는다고 죽은 아이가 돌아 오겠소? 내가 그 애한테 갈 수는 있지만, 그 애가 나한테 돌아 올 수는 없지 않소?” (공동번역 사무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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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설교 시간에 이 본문이 소개되었다. 설교 내용은 잊었지만 이 이야기는 잊지 못한다.
아이가 태어나고 세상을 떠나는 이 짧은 일주일 동안 아비는 느꼈을 공포를 생각한다. 하느님의 유죄 판결과 처벌을 듣고 먼저 닥쳤을 막연함.
아이가 죽을 것이라니? 이 선고 이후 출산을 기다리는 기쁨은 죽음을 기다리는 공포로 바뀌었다. 그렇게 기쁨이 죽음으로 바뀐 후, 다윗의 영혼도 시들어 갔으리라. 나와 닮은, 내 본질이 죽기 위해 태어난다니.
아담이 아내를 만난 후 고백했던 “내 살 중의 살, 뼈 중의 뼈”라는 말은 흥미롭게도 자식에게도 적용된다. 남자는 자식에게서 자신을 발견하고, 기뻐한다. 다윗이에게는 이 기쁨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가 아이에게서 발견하게 될 것은 자신의 죽음이다. 이전에 대언자가 했던 말은 허공에 흩어졌으니 내가 잊어버리면 허황하게 지날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병든 아기를 보는 그 순간 죽음을 발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절대 빗나가지 않는 심판! 아이는 그를 닮았고, 다른 것이 아니라 그의 죽음을 닮아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미 아이가 죽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울며 매달렸던 것은, 세상을 스쳐지나는 어린 영혼의 장례였을지도 모르겠다. 어린 아이는 죽음을 슬퍼할 사람이 부모 말고는 없으니 내가 미리 슬퍼하며 장례를 치르자, 혹시 죽음을 슬퍼하는 조물주가 이 서글픈 장례를 보고, 나의 슬픔을 보고, 마음을 돌이키실까, 이런 말도 안되는 희망을 가졌던 것은 아닐까.
아이가 죽을 병에 걸렸다. 아이에게 왜 그 불행이 닥쳤는지 성경의 설명은 부적절하지만 – 갓 태어난 아이의 병보다 불공평한 것이 있을까? 내겐 어린 아이의 죽음같이 분한 일이 없다.
그러나 구경꾼이나 화를 낸다. 아비는 분노할 힘이 없다. 아이와 함께 죽어 갔으니, 아이가 누리지 못한 시간을 애곡하고 있었으니, 아이를 돌려달라고 – 사실은 자기 생명을 돌려 달라고 간절히 빌고 있었으니.
이 이야기는 다윗의 성공담으로 이어진다. 솔로몬이 태어나고, (버림받지 않은) 사랑받은 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국가는 강성해졌다. 그러나 다윗이 죽은 아이를 잊었을까? 다윗이 이렇게 이야기했다. “내가 그 애한테 갈 수는 있지만, 그애가 나한테 돌아 올 수는 없지 않소?” 그의 남은 삶은, 이름도 없이 세상을 떠난 아이에게 돌아가는 길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