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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프트웨어 회사가 ‘AI 팀원’ 서비스를 내놓고 TV 광고 캠페인을 시작했나보다. 마케터, 작가, 디자이너 역할을 맡은 캐릭터들이 3D 가상 사무실에서 일하는 풍경을 사용자에게 보여준다. 오늘 아침에는 페이스북에서 여러 페르소나를 두고 AI를 부리는 방식이 대단한 성취처럼 소개하는 글도 읽었다. 나도 연구목적으로 역할을 나눈(페르소나라고 한단다) AI 도구를 만들어 쓰고 있어서, 이것이 혹시 상품성이 있는 일인지 궁금해졌다. 결론부터 말하면 내가 만든 건 상품성이 없다. 역할을 나누는 구성 자체는 새롭지 않기도 해서. 그리고 RAG에 기반한 내 워크플로우는 가져다 쓰기도 복잡하다(시행착오를 기억해보면). 이런 역할분담이 새삼주목받는게 신기하긴 하다.
이런 역할을 분담하는 과제처리는 여러 오픈소스 프레임워크가 이미 제공하고 있는 기능인데 기억할 점은 역할을 부여한다고 결과가 좋아지는지 아직도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내가 보았던 광고들은 개선된 서비스가 아니라 포장을 파는 것이었을까? 설치 없이 쓸 수 있다는 편의성, 기존 도구와의 연결된다는 약속, 작업 승인 절차의 보장 같은 것들이다. 일 잘하는 직원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결재 받으러 온다는 안정적인 비유. 아바타는 실제로 걸어 다니지 않지만 이 아바타가 돌아다니면서 일하는 풍경을 내려다 보는 것처럼 연출했다. 회사는 이 아바타를 사랑하게 될 것처럼 전제했다- 사용자는 고용주도 아니라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데 사랑하게 될까? 그저 익숙하다는 이유로 구독서비스에 사로잡히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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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혁신을 보면 모두가 조바심을 느끼고 서두르고 있는 듯하다. 기업은 AI 기업으로 보이지 않으면 저평가될까 조급하고, 개인 사용자도 AI 쓰지 않으면 뒤처질까(그게 기껏 온라인 주문, 예약인데도) 다급하다. (기술혁명에 과잉 투자는 피할 수 없긴 하다만.) 이게 학문 생태계에도 들이닥친듯 하다. AI로 문헌을 찾고 분석해 심사를 통과할 원고를 쓰고, 그 심사마저 (암암리에) AI가 한다. 독자는 다시 AI 요약으로 읽는다. 동료심사 보고서와 논문 초록의 적지 않은 비율이 이미 언어모델을 거쳤다는 분석(10~20%란다)도 나와 있다. 느리더라도 직접 읽고 정리하는 편이 나은 공부법이 있다. 글을 읽어봐야 잡히는 대화 (모든 글은 대화다. 저자는 결론에 도달하도록 망설이고, 강변하고, 양보하며 타협을 시도한다)가 요약에는 생략되어 버린다. 필요한 것이 명제라면 뭐, 요약을 읽으면 되겠지만, 글을 읽는 행위가 자신도 바뀌는 상호작용이라는 점은 AI 문헌 분석에 포함될 수 없다. 그런데 글을 쓰는 사람도 자기 글의 운명을, 초록 – 그보다 짧은 결론 한줄-으로 한정되리라 생각하고 있을까? 모르겠다. 요즘 감당이 안되게 들어오는 리뷰 요청(예전에는 decline 버튼이라도 해줬는데 요즘은 그것도 건넌다. editor 심정으로는 decline도 고마운 응답이다)을 보면 그냥 글을 밀어내고 있는 것도 같다. 직접 읽고, 적은 글을 인용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대화를 담는 식으로 써서는 뒤처질 수 있다는 압력이 분명히 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 같은 사람은 특별한 전략을 고심하곤 한다- 인용을 많이 하는 것이 전략처럼 느껴진다, 아니면 자주 노출되지 않았을 ‘local’한 관점을 강조하기. 그렇게 출간해봐야 읽히리라는 보장도 없다. 누가 내 글을 인용했다는 고마운 메시지도 그게 사람이 읽은 건지 아님 AI가 걸러준건지도 모르겠어서, 그냥 흘린다. 이미 논문이 너무 많아져서 이전 10여 가지 저널을 쫓아가던 방식으로는 턱도 없어졌다. 이제는 저명한 저널에 게재해도 읽는 사람이 없을 것 같다. 소셜미디어가 학문적 소통 경로라는 주장도 나온다.
다만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은 AI 이전에도 있었다. 편수를 세는 평가 체계가 이미 그런 글을 대량으로 만들어 왔으며 AI는 그 병을 가속시켜 드러냈을 뿐이다. 텍스트가 넘칠수록 희소해지는 것은 사람의 판단, 직접 수집한 자료, 그리고 신뢰다. 느리게 읽는 일은 개인의 고집으로 남으면 뒤처짐이 되지만, 공동체의 규범이 되면 기준이 된다. 그 기준을 세우는 일이 지금 학회와 학술지가 해야 할 일은 아닌지- 요즘 학술지의 경향을 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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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생태계는 더큰 정보생태계(infosphere)의 일부에 불과할수도 있다. 생태계는 모든 구성원이 agent-patient다. 나는 글을 쓴다- 글을 읽고 인용한다- 내 글이 인용된다. 이게 이전의 이해였다면, 이제는 내가 글을 쓰고 소비하는 방식이 다른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내 방식 역시 변화된다. AI을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이라면 최선의 방식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게 된다. 나 혼자 느릿느릿 읽고 쓰면 되려는지, 이런 종류의 글을 쓸 것인지, 전통적인 학술 커뮤니케이션에 변화가 필요한 것인지.
그보다 근본적으로 학자가 쓴 글을 인정하는 (결국 보상이다, 학자는 글을 쓴다는 점에서는 노동자에 가까우니까) 방식의 변화가 필요할지 모르겠다. 그 방식이란 지식의 형태에 대한 다른 이해를 요구할 수도 있다. 통찰과 자기성찰, 일관성과 창조성 같은 것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 AI 활용도 이런 방식의 사용이 가능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