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제네바에서 WHO Expert Consultation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이다. WHO가 캐나다의 지원을 받아 조직한 그룹 내에서 지난 몇 년간 논의되어왔던 “죽음의 판정절차”를 최종적으로 다듬고 결정짓기 위한 자문회의였다.
몇 차례 회의 때마다 반복된 죽음의 정의와 관련된 “윤리적, 법적” 논란을 피하기 위해 개최측은 처음부터 이번 회의가 “임상적, 과학적” 측면에 국한된 것이라고 강조해왔는데, 그렇게 논의를 좁힌 결과일지, 이번 회의는 수월하게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다. 심장사 진단 과정에서 반드시 충족해야 할 임상적/진단적 기준을 먼저 논의했고, 이어서 논란의 핵심에 있는 뇌사 진단 과정의 문제를 이야기 했다.
심장사는 비교적 간단할 수 있었던 것이 어느 사회라도 심폐기능정지가 죽음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렇게 국제 회의까지 거쳐야 했던 것은 ECG, intra-arterial (BP) monitor, ecocardigram을 활용할 수 없는 남반구 의료시설에서도 심폐사 진단이 선진국과 동일한 최종적인 판단이 되도록 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임상적인 진단으로 사망을 확진할 수 있으나, 가능하면 진단기구를 활용하도록 하는 것으로 결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뇌사는 그렇지 않다. 이미 뇌사라는 것 자체가 기술의존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호흡보조장치와 다양한 신체계측, 약물 및 보조적 조치가 없으면 이미 뇌사라는 현상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개발도상국의 경우라도 진단 과정에서 CT나 Transcranial doppler 등의 진단 도구 사용을 거부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다만, 특히 CT angio 검사 없이도 뇌사판정이 가능하도록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해 애썼다. 결국 여기서도 임상적 진단과 보조적 진단검사를 구분하고, 필요한 조건 등을 제시하는 선에서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런 진단 기준은 우리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 제시하고 있는 뇌사판정기준과 상충하거나 하지는 않아 필자가 크게 목소리를 높일 필요는 없었다. 우리 법은, 우리나라 의료서비스가 심각하게 기술의존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제시된 기준에 못미칠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합의가 가능했던 것은 모호한 표현을 최대한 줄이자, 임상적 내용에 집중하자는 초기 제약이 크게 영향을 미쳤고, 참석자들이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로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 불편했던 것은, 사석에서 주최측이 한 말처럼, 일본(여기에는 한국도 포함된다는 불편한 진실)이 말썽이라는 사실이다. 우리 법은 1990년대 말 뇌사자 장기공여를 합법화 하기 위해 급히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장기이식을 위한 뇌사판정만을 인정하는 괴상한 형태를 띠고 있다. 정말 괴상하다. 논리적으로 우리 법 x체계는 뇌사자의 장기를 착취하는 구조다. 죽지 않은 사람을 죽었다고 치고 장기를 가족의 허락을 받아 떼내는 이런 괴상한 논리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지 나는 참 이상하게 생각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3000명 가까운 뇌사자가 집중치료를 받는다는 연구 조사가 있다(무의미한 치료라는 논쟁적 표현을 피하더라도 이 환자들은 고통받고 있다. 분명히). 뇌사 인정문제는 장기이식과 무관한 문제다. 이걸 구별하려 하지 않는 우리의 게으름을 부끄러워 하자. 어떻게든 사망에 관한 법적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 추가
이번 회의 내내 몇 가지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과학은 윤리를 앞서갈 수 있을까? 보통 윤리가 과학의 한계를 짓는다고들 하지만, 이번 회의는 그 반대의 가능성을 보였다. 동시에 과학적 논의가 윤리적-철학적 논의를 피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에 회의 주최자들의 나이브함도 솔직히 – 그러나 여기 참석한 임상가 중 이런 회의적인 태도는 찾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