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에서 연명의료결정관련 입법안을 소개하는 발제를 하게 되었다.
늦은 감이 있는 입법이고, 그 내용도 (환자의 자기결정권 입장에서 보면) 심하게 축소되어 있는 법안이지만 걱정하는 사람들 많다. 그 걱정이란 게, ‘죽을 것임을 어떻게 아느냐’, ‘사람마음이란 변하게 마련인데 이전에 한말 그대로 하면 안된다’, 그리고 ‘사람 죽는게 그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정도로 모이는 것 같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이런 입법의 중요한 목적을 잊는 것 같다. 그 목적이란 “죽어가는 연약한 인간을 소외로부터 보호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경험할 일을 알지 못하고 그래서 대처하지도 못한채 낯선 사람, 낯선 환경에서, 사랑하지만 남일수밖에 없는 가족과 친지에게 결정을 맡기는 것이 소외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우리 문화가 체면을 앞세워 정작 돌보아야 할 환자는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지 않는지 돌이켜볼 일이다.
물론 의심은 권리고, 그런 의심으로 모든 제도는 모순을 극복하고 받아들일만하게 변화한다. 또 이런 의심을 제기하는 이들의 선의를 나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선의가 있지도 않은, 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점만을 부각시켜, 결국 말못하고 죽어가는 이들이 겪는 어마어마한 악을 유지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선의를 선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