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상충과 업무방해 사이에서

이해상충

  • 이해상충(conflict of interest)이란 일차적 이해관심사에 관한 전문가적 판단이 이차적 이해관심사(들)에 의해 부당하게 영향을 받는 상황 또는 조건의 집합을 의미한다. 

업무방해

  • 형법 제314조(업무방해죄) ① 제313조의 방법(허위사실 유포 또는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미수범은 처벌하지 않는다.

우연히 서울대 김옥주 교수님의 옥시사건과 이해상충에 관한 강의를 전해 듣게 되었다. 흥미로운 주제여서 생각해 보았던 것이다.

옥시 ‘가습기 당번’과 비슷한 성격의 가습기 살균제 판매가 확대되었던 것이 2001년 무렵부터다. 그리고 환자는 2011년부터 발생이 증가했고, 그해 11월 가습기 살균제가 역학적으로 원인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그리고 문제의 서울대 수의대 독성 연구는 2012년에 있었다. 일부는 연구조작이라고 하고, 김옥주 교수는 연구분야 이해상충이라고 하였다.

연구를 평가하기 위해서 일단 왜 연구를 했고, 왜 연구 결과를 실제와 달리 보고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연구자의 입장에서, 연구 의뢰자의 입장에서 보면 2X2 표가 만들어진다.

이해상충은 ‘조건’을 지시하는 것으로 연구자의 부당한 행위를 전제하지 않는다. 연구자가 의심받을만한 조건에 처해 있을 때, 이해상충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언론보도를 통해 전해진 것은 의뢰자는 책임을 피하기 위해 인과관계가 없다는 연구결과를 원했고, 그런 결과를 요구했으며 연구자는 (돈을 받은 것과 무관하게) 그런 연구결과를 제시했다. 그렇다면 이 경우는 이해상충이 아니라 업무방해에 동참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경우 자신의 직위와 전문성을 악용한 고약한 경우다. 사기죄는 아닐 것이, 이미 발생한 피해의 원인을 밝히는 과정을 방해한 것이지 어떤 행동을 유도하지는 않았기 때문.

대체 어느 단계에서 연구행위가 업무방해/사기행위로 전락하게 되는가? 모든 연구자든 이해상충을 극복하고 신뢰할만한 연구결과를 제시해야 하는 외줄타기를 하는 셈이다. 연구 결과에 대한 기대나 충분한 예측이 없이 그저 아무런 실험을 해 보는 것은 낭비다. 그렇다고 연구를 시작하며 세웠던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그리고 가설의 입증에 따르는 명성이나 재정적 이익을 목표로, 결과를 조작하는 것도 연구부정이다. 그리고 연구부정은 이해상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서울대 보고서를 구해서 읽어보면 조금 분명해 질수도 있겠으나, 일단은 이정도. 옥시사건은 미안하지만 업무방해였다.

수술과 절제한 암덩어리

의과대학 수업시간에 HeLa 세포라는 이름을 들은 적 있다. Henrietta라는 이름의 여성에게서 얻은 자궁경부암 세포를 키워내 만든 세포들에 붙인 이름이다. (하나의 세포를 분열시켜 만든 세포들을 세포주, strain이라고 부른다)
헨리에타는 1951년 사망했지만 그녀의 세포는 보통의 세포들과 달리 죽지 않는 장점을 가지고 있어서 의학연구에 여러모로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들 연구에는 소아마비 백신 개발도 포함되어 있다.)

산술적으로는 6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사용되었던 이 세포주는 채취과정에서 이후 활용에 대한 동의를 환자 본인에게 받지 않았고(그 시기에야 수술과정에서 얻은 검체 사용에 동의를 얻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 결과 인종적/성적 차별까지 포함하여 다양한 비난을 받고 있다.

1. 개인의 유전적 정보가 그 이름과 함께 모두 공개되었다는 것, 그것도 동의를 얻지 않은 상태에서.
2. 많은 연구자들이 이익을 얻고 있으며, HeLa 세포주를 개발한 이들도 이익을 얻었을 것이지만 환자 본인이나 그 가족이 그 이익을 나눠갖지 못했다는 점
3. 이런 잘못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사과나 보상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점

2013년 8월 미국 보건원(NIH)과 헨리에타의 가족은 비밀을 보호하고, 이후에 HeLa 세포에서 얻은 추가적인 유전정보 사용시에는 사전에 검토를 하는 등의 해결방안에 합의했다.

이 사건은 기구한 한 여성의 이야기로 소개된 바 있다.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 연구자나 연구를 감독하는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 문제가 아니었던 관행이 오래지 않아 추문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곤란한 이야기가 된다. 다행인 것은 지금까지 연구자나 연구기관은, 비틀거리긴 했지만, 용하게 이 문제들을 해결해 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