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결정법과 신념의 관철

 

최경석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의 쟁점과 향후 과제(한국의료윤리학회지 19(2):121-140)”이라는 다소간 긴 논문을 통해 법률의 전반적인 함의와 이후 실현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문제를 통찰력있게 제시했다. 그러나 법률에 내재하고 있는 모순 때문에 좀 더 근본적인 비판과 대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저자가 국회 제출안을 다듬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이 법의 지향점을 잘 반영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이 논문은 특히 중요하다. 이 글에서는 최경석의 논의를 따라 새로운 법의 한계점과 대안을 모색해 보려 한다.

먼저 최경석은 이 법률의 제정 의의로 “연명의료중단의 오-남용을 막고 인간 생명 존중의 정신이 훼손되지 않게 하는 조치들”을 제시하고, 인간 생명 존중의 정신이 이 법의 대상을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받고 있는 연명의료를 규정하는 것으로 소개한다. 그런데 저자의 주장대로 인간생명존중의 정신이 완화의료서비스가 제공되고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의학적 조치가 제공되는 유일한 근거인가? 의료인의 전문성이나 상식은 어디에 있는가? 삶의 질에 대한 판단이 왜 적절한 의료서비스 판단의 근거가 되지 않는가? 의학적 무의미함은 환자에게 해를 입히는 것만큼환자가 원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생명 존중, 또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같은 모호한 개념은 완화의료와 필요한 의료서비스 제공의 근거가 아니라 자율적 결정의 제한 요소로 작동하고 있을 뿐 아니라 좀 더 심각하게는 삶의 질 논의 자체를 무력화 시키는 논리로 작용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이 법의 의의를 생명존중이라는 말로 포장하면서 정작 자기결정권이나 삶의 질 판단과 같은 동등하게 중요한 가치가 논의 과정에서 생략된 이 법을 정당화하고 있지 않은가 의심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이 법은 사전의료의향서나 대리인 지정과 같은 환자의 의사 반영 절차를 오남용의 가능성을 들어 최대한 약화시키고 규제하고 있다. 예컨대 이 법은 일부 생명윤리 담론 참여자의 관점이 관철된 것이지 “상당한 사회적 합의”가 아니다.

이어서 이 법의 해결해야 할 과제를 제시되는데, 이 내용은 논문의 중요한 기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의학적 기준 마련, 호스피스-연명의료의 관계 정립, 진단과 예후에 대한 정보 제공, 병원윤리위원회의 기능, 사전연명의료의향서 관련 제도의 정립 등을 2017년 하반기 시행을 앞두고 해결해야 할 과제로 제시한다. 필자는 저자의 문제 제기에 공감한다. 하지만 이런 문제제기는 의료인의 전문성이나 시민사회의 동기와 역량에 대한 의심이 기저에 있다.
이 법의 시행 과정에서 우선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는 보라매 병원 사건 이후 지난 십 수년 동안 임상에서 임종에 대한 결정이 책임회피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인상이나 자기 비판이 아니라 실제로 어떻게 내려졌는가 하는지에 대한 실증적인 성격의 것이었다. 누가 이해당사자로 참여하고 있으며, 어떤 종류의 의학적 조치가 제공되고 있으며, 의료전달체계를 어떻게 이용했으며, 비용은 누가 부담했고, 치료의 결과에 대한 인식은 어떠했는가에 대한 지식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가 없었기 때문에 이 정책은 장단기적 목표설정보다는 임종과정 관련자의 비윤리적, 관습적 행위를 전제로 할 수 밖에 없었고 제한적, 규제적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도덕주의적인 입법 정책은 호스피스-완화의료서비스에는 안전장치를 포함하지 않는 일방성을 갖게 만들었다.

사전의료의향서에 대한 “임의로 담고 있는 문서”라는 표현 역시 저자의 인식을 드러낸다. 연명의료결정은 환자의 의사를 반영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며, 평가와 선택은 본질적으로 임의적이다. 입법이 이루어지기 전에 판단하여 기록한 대리인이나 급식관 거부를 임의적 – 법적 테두리를 벗어났다는 의미를 가질 것이다 -이라 표현하는 것은 폄훼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자발적 기록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는 “객관적인 증거에 의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내용을 의심”하게 될 경우 “그 효력을 상실”시키게 해야 한다는 논의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이법이 제시하는 그렇게 엄격한 절차를 거친 후에도 부적절하게 작성될 상황이 발생하리라는 가정은 모든 종류의 자율적 판단을 의심하는 것과 다르지 않고 의료진에게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무엇도 믿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심지어 의료진에게 확인된, 명백한 의사를, 두 사람의 전문의가 판단한 상황에서도 따르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대체 시민들의 판단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 것인가?

이 법이 협상의 산물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는 것은 협상이 아닐 것이다.

아이러니

오늘 가톨릭의대에서는 ‘장소만’ 빌려서 환자연명의료결정법(이것이 공식 약칭이다)에 관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팻이 주제 강연을 하는 모임. 한국에서는 암센터의 장윤정 박사가 몇 가지 고려 사항을 발표했다.

팻은 아주 현명하게 본인이 가톨릭신자임을 알리고, 어머니를 모시는 과정에서 MOLST가 도움이 되었다고 강의했다. Okay,
장윤정 박사의 약력을 듣는 순간, ‘악! 이 사람이 석사를 가톨릭대에서 했구나. 가뜩이나 포악한 가톨릭 생명윤리의 영향을 받았으면, 대체 발제가 어떻게 될까?’라는 걱정을 했고…

그러나, 예상 밖의 분명한 메시지. 가톨릭이 관철시켰던 몇 가지 문제들과 법이 혼란을 야기한 내용들, 입법 과정 마지막에 두 법을 억지로 붙여 놓은 이들에 대한 따끔한 문제제기!

그러나 진짜는 토의 시간에 있었다. 삶의 질에 대한 그 낡은 이동익 신부의 논평이 끝난 직후, 노유자 수녀가 삶의 질을 왜 이야기 하지 않느냐, 어떻게 삶의 질 고려가 빠지는가 라는 내용으로 응답했다. 물론 ‘개인적 의견’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오전 세션이 끝나자, 윤영호 교수가 앞으로 달려가고 이동익/윤영호/노유자의 나는 잘 모를 논쟁이 벌어졌다. 깨지지 않을 것 같던 벽이지만, 균열은 이미 깊었다. 그것을 회칠해서 감추어 두었을 뿐이고.

전해 듣기로는 장윤정 박사는 이 발제 준비하며 대상포진이 생겼다고 하고, 본인은 발제 마지막 시점까지 몇번을 고쳤다고 한다. 대체 학자의 논의까지 자기검열하게 만드는 이 종교란 무엇인가. 그게 삶을 풍성하게 하는 것인가?

죽음에 대한 법

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고 한다.
법안의 이름이 상당히 길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법안은 두 갈래의 목적을 두고 있다.
하나는 연명의료에 관한 것이고

연명의료에 대한 기본원칙, 연명의료결정의 관리 체계, 연명의료의 결정 및 그 이행 등에 필요한 사항을 정하여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을 제도화함으로써 환자의 자기결정을 존중하고 환자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며,

다른 하나는 호스피스-완화의료의 확대제공이다.

암환자에만 국한되어 있는 호스피스 서비스를 일정한 범위의 말기환자에게 확대 적용하도록 하고, 호스피스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근거 법령을 마련하여 국민 모두가 인간적인 품위를 지키며 편안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임.

 

해당 위원회를 통과한 것은 반갑지만 법사위와 본회의를 통과하는 일이 아직 남아있고, 하위법령을 개발하는 정말 복잡한 일이 남아 있다. 법안을 적극 지지했던 그룹과 내켜하지 않던 그룹이 정말 벼르고 있는 단계.

게다가 이 법이 통과되더라도 실행과정에 계속 문제가 생길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결국 우리나라의 사고는 사태를 범주로 나누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행위자의 합리성을 인정하고 그들이 고려할 가치와 준수할 절차를 지정하는 수준을 넘어서 이건되고, 저건 안되고… 시시콜콜히 지적하는 법률을 만들고 싶어했고, 이 법은 이도저도 아니게 그런 지시가 담긴 법이 되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임종과정”을 회생의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한 상태로 함.

회생의 가능성, 회복되지 않음,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 사망이 임박. 언뜻 보기에는 별문제 없는 이 타협안은 실제 임상에서는 심각한 장애가 될 것이다. 치매, COPD, PVS, 뇌사… 결국 급속도로 악화되는 질병이 아닌 경우, 이 병들은 합병이 생긴 경우에만 이 법의 적용을 받을 것이 분명하기에. 게다가 이 법이 적용되는 순간에도 중단할 수 있는 치료법이 한심할 정도로 제한되어 있어서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의학적 시술로서

결국 이법은 – 아무리 법이 호스피스의 확대를 선언하고 있다고 해도- 암에 국한된 법이 될 가능성이 너무 높다.

이 법이 시행되면 의료계는 여러가지를 배워야 할 것이다. 서류작성부터 결정절차, 판단의 경험쌓기, 법적 함정을 피하거나/넘어지는 경험들… 그리고 시민들의 오해와 ‘종교계’의 항의와 정책적 무관심까지 거쳐야 할 일이 너무 많다.

혼란은 의료계와 사회가 지불해야 하는 수업료일까? 아니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너무 쉽게 타협한 다른 종류의 댓가일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