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la Ethics

이번 유행이 서부 아프리카 몇 개 국가에서 확산되다 끝날지, 아니면 더 많은 나라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지 모르겠으나, 의료윤리학자로서 몇 가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다. 

 

1. global ethics, or ecological perspective

– HIV, Ebola 모두 환경 파괴와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발견된지 40년이 지나도록 (HIV 전에 발견되었다) 치료나 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연구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서구 제약산업/의학연구의 관심의 폭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자국민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는 질병만이 연구의 대상이 된다.  과연 제약산업/연구자의 책임은 어디까지 일까? 이들에게 Ebola 치료법을 개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요구가 아니었을까? 

-물론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부담을 스스로 지는 태도도 요구된다…만, 현실정치는 조금 다르긴 하다. 

 

2. quarantine, national security and public health governance

– 병에는 국경이 없다. 물론 사람들에게는 있고, 당연히 환자들에게도 있다. 치료법이 없는 병에 걸린 감염성질환자가 국경을 넘어와서 난민처럼 지내도록 허용하는 것이 윤리적인가? 정당화 할 수 있는 제한이 가능한가?  

– 심지어 이 병은 잠복기도 21일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단 입국을 허용한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추적할 수 있는가? 난민을? 게다가 아프리카 국가들이? 

– 이들 국가에서 온 사람들을 정상인으로 간주해야 하나? 최악의 경우 이들을 ‘독’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국제 분쟁이나 제노사이드의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누구 말대로 가장 밀도가 높은 지역에 핵이라도 떨어뜨려야 하나? 그렇게 안전해지면 좋을까?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시키는 전략은 어떤 극단적인 경우에 사용할 수 있을까? 
가능한 조건은, 1) 다른 방법이 없다, 2)효과가 확실하다, 3)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했다, 4)최소한 책임있는 사람들의 (기록에 남은) 논의가 있었다 정도가 아닐까? 

 

3. use of developing drugs and benefit-risk balancing

– 지금 주목받는 치료제는, 재미있는게, 20세기 초에 잠시 반짝했던 단일항체요법과 관계가 있는 것이란다. 

– 지금껏 무시했던 병의 확산에 깜짝 놀라 치료제를 사용하기는 하는데, 이런 개발단계의 약물을 치료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기존의 약물개발원칙을 무시하는 위험한 행동이 아닌가하는 질문을 하는 어의없는 사람도 있다. 

– 중요한 문제는 정말 급한 사람에게, 그리고 효과를 크게 볼 사람에게 약물이 전달되도록 보장할 방법이 있느냐는 것인데, 솔직히 암담하다. 시민권이 문제가 될 거다.

 

4. professional ethics

– 미국인 환자가 발생했을 때 국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환송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치료법이 효과를 볼것이란 판단과 함께, 이들이 구호활동 중이었다는 것이었다. 

–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 일에 애쓰는 프로페셔널은 사회가 보호한다(아니, 보호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 국가에서 의사, 간호사, 경찰이 위험을 핑계로 진료를 거부하고, 위치를 이탈하고, 그런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무조건적으로 비난해야 하나? 

 

5. solidarity & quarantine : 자국민이 외국에서 발병했을 때

– 질병관리본부는 외국에서 에볼라 환자가 발생하면 그냥 거기 있도록 한다는 방침을 알렸다. (바보같이) 한국엔 4급 방역시설도, 마땅한 치료제도, 없으니 그게 현실적일수는 있다. 그러나 이런 정책의 정치적인 의미를 생각해 보자. 

–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고전정치학). 그런데 자국민이 외국에서 치명적인 질환에 걸렸음에도 무시한다는 것은 국가의 존립기반을 위협하는 것이다. 물론 가지말라는 곳에 가서 납치되거나(아프가니스탄), 감염된 경우라면 이들은 비난을 받겠지만 그렇다고 이들을 보호할 의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국가는 그런 상황에서도 국민을 구하고 (그다음에 벌을 주거나 하면된다)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게 누가 좋아하는 국격이다) 국민은 자신의 행위가 국가와 동료 시민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지만, 그보다 앞서는 것이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책무다.

– 그리고 그 책무는 시민사회가 정권을 압박해서 실현시켜야 하는 거다. 

병원은 자선과 환대의 공간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원장이 중앙일간지에 기고한 기사에 당혹감을 느끼다. (원문: 병원은 꼭 치료만 하는 곳은 아니다)

의료법인의 부대 사업과 관련해서 영리화 논쟁이 벌어지는 중에 “보사연” 원장이 던진 sh*t 덩어리. 

그이는 hospital과 hotel이 ho- 라는 같은 발음을 가진 것에서 힌트를 얻었나보다. 그래서 병원도 호텔처럼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를 편다. 배운 사람, 책임있는 사람이 한 말이 이 수준이라는 것이 한심할뿐이다. 

– 프랑스 파리에는 중세에 (7세기) 지어진 병원(행려병자 수용소지만)이 Hotel Dieu (하느님의 집)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사실 프랑스 여러지역에서 이 이름을 가진 병원이 지어졌다.  병원의 어원이 ‘호텔’인지 모르겠으나 병원이 원래 병든 이들을 돌보는 곳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기독교적 의미에서 자선(charity)과 환대(hospitality)가 병원의 본질이지 스파와 건강식품이 병원의 본질은 아니었다. 
파리에 있는 Hotel- Dieu 위키피디아에서

파리에 있는 Hotel- Dieu 위키피디아에서

로또 임상이라니…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아는 분이 메일을 보내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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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의견을 구할께요.

아래 기사와 같이 소위 ‘로또 임상시험’의 경우,

임상시험대상자(피험자)를 어떻게 모집해야 할까요?

 

벨몬트 원칙에 따르면 임상시험대상자를 선정할 때 ‘정의의 원칙’을 따라서

인종, 재산, 교육, 친소관계 등과 무관하게 공정하게 선발해야 하는데,

이런 경우 의사들이 잘 아는 가족이나 환자들을 우선적으로 인롤 시킬 가능성이 있고,

그 과정에서 힘 없는 사람이 배제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그리고 만약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큰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오히려 이렇게 시험대상자로 선정된 사람들이 제대로 항의하기도 어려운

취약한 시험대상자(취약한 피험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데…

 

고견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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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답했다.

재미있는 주제를 주셨습니다.
C형 간염 치료제는 아니지만 비슷한 문제들이 이미 개발도상국에서는 고질적인 문제가 되어왔습니다.
사하라 이남의 극빈층을 대상으로 선진국이 임상시험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문제들이 지적되었는데,
1. IMF 등의 요구로 보건의료비 지출을 줄여서 공공보건을 포함한 보건의료가 붕괴된 지역에, 임상시험을 통해서 ‘치료제 (항생제가 주입니다)’가 공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적하신 대로 이 임상시험 약물이 연구자와 관련있는 사람들에게 치료제 처럼 공급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정부가 보건의료체계에 투자하지 않게 된다는 점 등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2. 이미 알려진 치료제가 있는데도 이들 지역에는 시험약이 제공되고, 결국 피해를 입게 되기도 합니다 (2000년대 중반 시험약물이 HIV 관련 설사 치료에 공급되었는데, 이미 알려진 치료제가 있음에도 효과를 확인할수 없는 이들 약물로 인명피해가 발생했습니다 – 이 결과는 JAMA에 실렸지요. 사망자는… 그저 임상시험 대상이었구요)
우리나라에서도 고가의 치료제가 제공되니 비슷한 상황을 염려하게 되는군요.
임상시험이라고 하는데, 외국에서는 치료제로 시판 허가를 받은 약물인가 봅니다. 국내 2상, 혹은 3상 시험일 가능성이 높네요. 국내 시판을 목표로 절차를 밟아가는 중이군요.
이런 경우는, 솔직히 일종의 샘플로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원칙적으로는 임상시험이고,
이중맹검을 하겠지요. 이렇게 임상시험을 진행한다고 하면 누가 시험군/대조군에 속하게 되는지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물론 문제는 배제된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경우입니다만, 이론적으로야 이 사람들 피해입은 것 없습니다.
이런 경우 임상시험의 원칙을 적용해야겠지요.
1. 임상시험을 진행하다가 혜택/피해가 통계적으로 분명해진다면 즉시 그 사실을 알리고 효과가 있거나/해가 없는 치료법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이 원칙이야 연구계획서에 항상 들어있으니 준수를 요구하면 됩니다. (연구자와 스폰서는 이 부분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겠지요. 3상이라면 부작용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할테니까)
2. 대조군시험이 아니라 사례연구로 진행하도록 연구 모델을 바꾸는 것도 가능합니다만… 이렇게 진행될 수는 없겠지요 (알량한 논문도 안나올테고, 식약처 승인도 어려울테고)
3. 대조군/시험군 배정에 대한 공정성을 확보하도록 모델을 잘 검토해야 합니다.
4. 이렇게 치료효과가 분명하고, 이 약물 외에 다른 치료법이 없는 환자군은 말씀대로 취약한 피험자입니다. 이들을 대상으로 고가의 치료제를 제공하는 것은 유인 또는 강압에 해당하구요. 언론이 이렇게 떠들었으니 피험자 모집도 아주 끝내주게 된 상황일 겁니다. (이미 온라인 커뮤니티는 시끄러웠겠군요). 이런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연구계획서 심의를 시행하도록 해야할텐데, 아주 조심스럽습니다만, 이런 종류의 다기관 임상은 개별IRB가 아니라 공용IRB의 심의를 거치도록 하는 것도 한가지 안전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이해상충이나 불필요한 압력을 피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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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마음: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 – 책 읽기

바른 마음: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
조너선 화이트/왕수민, 바른 마음: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 서울. 웅진지식하우스, 2014. 689

 

-1-

도덕심리학은 분과학문으로서는 짧은 역사를 가졌으나, 탐구하는 문제는 철학의 처음부터 존재한 오랜 인간의 문제였다. 물론 이 책은 분과학문으로서 도덕심리학의 내용을 개괄적으로 소개하는 책이다.

저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도덕심리학의 원칙으로 다음 세 가지를 제시한다.
(1) 직관이 먼저이고, 전략적 추론은 그 다음이다.
(2) 도덕성은 단순히 피해와 공평성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3) 도덕은 사람들을 뭉치게 하고 눈멀게도 한다.

위의 기술은 객관적인 진술처럼 보이지만 그 자체가 도덕적인 진술임을 먼저 지적해 두겠다. 저자가 사용한 단어들을 보라. “전략적” 추론, “단순히”, “뭉치게… 눈멀게”

-2-

공평성, 피해라는 번역어는 솔직히 잘 오역이 아닌가 싶다. harm, fairness의 번역일텐데, 이 단어들은 도덕적 의미가 꽉 차있다. 피해는 잘못된 행위/이익의 감소가, 공정에는 기준/마땅한 몫, 이런 개념들이 들어가 있고, 그 자체로 한참 풀어나가야 할 것들이다.

 

-3-

저자의 시도는 도덕적 이해를 심리학/진화학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도출된 결론이고, 그렇게 이해하면 별로 충격적이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 이런 매끄러운 논리는 되려 결론에서 논리를 끌어낸 것 아닌가하는, 저자의 표현대로 “전략적 추론”의 결과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만든다. 솔직히 진화론적으로 해석하면 이렇다… 처음부터 밝히는 것이 정직하지 않았을까?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대중적인 책을 쓰려니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인가?

 

-4-

윤리와 심리의 상관관계는 자연과학이 갖는 한계 – 보이는 것밖에 정확히 해석할 수 없는, 조금더 정확하게는 보이도록 만든 것밖에 해석할 수 없는 한계를 반영한다. fMRI든, 심리학적 실험이든 그 결과물은 모델의 결과물이지 현실의 반영이 아니다. 미안하게도. 이 긴장을 견디며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저자의 주장을 무시하는 “눈먼” 사람이 되어서도 안되겠지만 저자의 주장에 묻히는 순진함도 피해야 할 것이다.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01163673&orderClick=LEA&Kc=

링크

AJOB Empirical Bioethics

http://www.bioethics.net/journals/ajob-empirical-bioethics-volume-5-issue-1/

생명윤리는 전통적으로 주장과 그 주장에 대한 철학적 논증을 방법론으로 활용해 왔다.

 

그런데, 최근 학문이 evidence-based이니 생명윤리도 경험적 연구를 회피할 수 없겠지. 미국 생명윤리학회가 간행하는 Am. J. Bioethics 자매지로 AJOB Empirical Bioethics라는게 있어 받아보기 시작했다. 그간 답답했던 문제가 조금은 풀리는 느낌이 든다. 이번호 editorial 에 적혀 있듯, 1) 경험적으로 밝혀낸 사실, 2)방법론, 3)전통적이라고 할 규범윤리학 접근이 주된 연구 주제가 될 것 같다.

연구 아이디어들은 있었는데 어찌 다루어야 할 지 몰랐던 주제들이 줄줄이 논문되어 나오는 것을 보니 서운함, 조급함, 답답함이 섞인다. 그런데 그만큼 반갑고 즐겁다. 읽고 공부할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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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란으로 배아복제 (NTSC)

수정란으로 배아복제 (NTSC)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사실 황 모가 자랑했던 ‘원천기술’이 실현된 것 같네. 

다만 기술을 실용화한 연구자와 대학으로 연결된 전문가의 comment가 한심하다. 폐기되는 수정란을 사용하니 윤리적 문제가 줄어들 것이라니, 애시당초 배아줄기세포의 윤리문제를 이해하지 못했구나. 

황우석 연구는 난자 매매가 이슈화 되었지만, 배아줄기세포는 배아를 ‘파괴’해야 해서 극렬한 반대가 있다. 낙태를 지옥갈 죄라고 믿는 사람들은 새 기술을 살인이라고 할 게다. 윤리문제는 모양만 바꿔서 계속된다. 

솔직히, 어느쪽이든 안될 이유가 내겐 불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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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다시 한번

줄기세포 연구에서 또다시 날조 사건이 벌어졌다. 줄기세포라서 우리 언론이 유난히 관심을 가진 모양이지만, 사실 흔하디 흔한 일이 과학연구의 표절, 날조, 위조다. 오죽하면 retraction watch (http://wp.me/YKlt), science-fraud (http://www.science-fraud.org) 같은 웹사이트가 운영될까. 

특히 retraction watch를 보면 하루에 보통 2~3개씩 포스팅 된다. 부지런한 것도 놀랍고, 그만큼 잡아낼 것이 많다는 것도 놀랍다. 다만 기억할 것은 이렇게 많이 잡아내는 과학의 자기점검 능력이다. 직접 잡아내지 않으면 안될 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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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파업은 윤리적 파산인가?

의사 파업은 윤리적 파산인가?

파업에 대한 사용자들의 가장 쉬운- 그리고 논점을 흐리는- 비판은 그 이용자들을 볼모로 삼는다는 것이다(이건 비판이 아니라 비난, 특히 도덕적 비난이다). 

지하철이 그렇고, 교사가 그렇고, 이번 의료계 파업이 그렇다 (솔직히 이번 파업 사태는 자영업자로 구분된 의사가 실제로는 고용된 사람이란 사실을 증명했다). 그리고 이번 파업이 지나면 의사들은 환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최선의 의료가 무엇인지 반드시 증명해야 할 것이다. 

납득할만한 설명이 없으면, 그저 더 큰 밥그릇을 달라고 칭얼거린 이기주의자로 내몰릴 가능성이 있다. 설명에 성공했어도 의사들은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특히 재정적인 이익을. 이번 처럼 의료의 공공성을 강조한 파업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