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마음: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 – 책 읽기

바른 마음: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
조너선 화이트/왕수민, 바른 마음: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 서울. 웅진지식하우스, 2014. 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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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심리학은 분과학문으로서는 짧은 역사를 가졌으나, 탐구하는 문제는 철학의 처음부터 존재한 오랜 인간의 문제였다. 물론 이 책은 분과학문으로서 도덕심리학의 내용을 개괄적으로 소개하는 책이다.

저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도덕심리학의 원칙으로 다음 세 가지를 제시한다.
(1) 직관이 먼저이고, 전략적 추론은 그 다음이다.
(2) 도덕성은 단순히 피해와 공평성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3) 도덕은 사람들을 뭉치게 하고 눈멀게도 한다.

위의 기술은 객관적인 진술처럼 보이지만 그 자체가 도덕적인 진술임을 먼저 지적해 두겠다. 저자가 사용한 단어들을 보라. “전략적” 추론, “단순히”, “뭉치게… 눈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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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성, 피해라는 번역어는 솔직히 잘 오역이 아닌가 싶다. harm, fairness의 번역일텐데, 이 단어들은 도덕적 의미가 꽉 차있다. 피해는 잘못된 행위/이익의 감소가, 공정에는 기준/마땅한 몫, 이런 개념들이 들어가 있고, 그 자체로 한참 풀어나가야 할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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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시도는 도덕적 이해를 심리학/진화학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도출된 결론이고, 그렇게 이해하면 별로 충격적이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 이런 매끄러운 논리는 되려 결론에서 논리를 끌어낸 것 아닌가하는, 저자의 표현대로 “전략적 추론”의 결과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만든다. 솔직히 진화론적으로 해석하면 이렇다… 처음부터 밝히는 것이 정직하지 않았을까?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대중적인 책을 쓰려니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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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와 심리의 상관관계는 자연과학이 갖는 한계 – 보이는 것밖에 정확히 해석할 수 없는, 조금더 정확하게는 보이도록 만든 것밖에 해석할 수 없는 한계를 반영한다. fMRI든, 심리학적 실험이든 그 결과물은 모델의 결과물이지 현실의 반영이 아니다. 미안하게도. 이 긴장을 견디며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저자의 주장을 무시하는 “눈먼” 사람이 되어서도 안되겠지만 저자의 주장에 묻히는 순진함도 피해야 할 것이다.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01163673&orderClick=LEA&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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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JOB Empirical Bioethics

http://www.bioethics.net/journals/ajob-empirical-bioethics-volume-5-issue-1/

생명윤리는 전통적으로 주장과 그 주장에 대한 철학적 논증을 방법론으로 활용해 왔다.

 

그런데, 최근 학문이 evidence-based이니 생명윤리도 경험적 연구를 회피할 수 없겠지. 미국 생명윤리학회가 간행하는 Am. J. Bioethics 자매지로 AJOB Empirical Bioethics라는게 있어 받아보기 시작했다. 그간 답답했던 문제가 조금은 풀리는 느낌이 든다. 이번호 editorial 에 적혀 있듯, 1) 경험적으로 밝혀낸 사실, 2)방법론, 3)전통적이라고 할 규범윤리학 접근이 주된 연구 주제가 될 것 같다.

연구 아이디어들은 있었는데 어찌 다루어야 할 지 몰랐던 주제들이 줄줄이 논문되어 나오는 것을 보니 서운함, 조급함, 답답함이 섞인다. 그런데 그만큼 반갑고 즐겁다. 읽고 공부할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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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란으로 배아복제 (NTSC)

수정란으로 배아복제 (NTSC)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사실 황 모가 자랑했던 ‘원천기술’이 실현된 것 같네. 

다만 기술을 실용화한 연구자와 대학으로 연결된 전문가의 comment가 한심하다. 폐기되는 수정란을 사용하니 윤리적 문제가 줄어들 것이라니, 애시당초 배아줄기세포의 윤리문제를 이해하지 못했구나. 

황우석 연구는 난자 매매가 이슈화 되었지만, 배아줄기세포는 배아를 ‘파괴’해야 해서 극렬한 반대가 있다. 낙태를 지옥갈 죄라고 믿는 사람들은 새 기술을 살인이라고 할 게다. 윤리문제는 모양만 바꿔서 계속된다. 

솔직히, 어느쪽이든 안될 이유가 내겐 불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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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다시 한번

줄기세포 연구에서 또다시 날조 사건이 벌어졌다. 줄기세포라서 우리 언론이 유난히 관심을 가진 모양이지만, 사실 흔하디 흔한 일이 과학연구의 표절, 날조, 위조다. 오죽하면 retraction watch (http://wp.me/YKlt), science-fraud (http://www.science-fraud.org) 같은 웹사이트가 운영될까. 

특히 retraction watch를 보면 하루에 보통 2~3개씩 포스팅 된다. 부지런한 것도 놀랍고, 그만큼 잡아낼 것이 많다는 것도 놀랍다. 다만 기억할 것은 이렇게 많이 잡아내는 과학의 자기점검 능력이다. 직접 잡아내지 않으면 안될 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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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파업은 윤리적 파산인가?

의사 파업은 윤리적 파산인가?

파업에 대한 사용자들의 가장 쉬운- 그리고 논점을 흐리는- 비판은 그 이용자들을 볼모로 삼는다는 것이다(이건 비판이 아니라 비난, 특히 도덕적 비난이다). 

지하철이 그렇고, 교사가 그렇고, 이번 의료계 파업이 그렇다 (솔직히 이번 파업 사태는 자영업자로 구분된 의사가 실제로는 고용된 사람이란 사실을 증명했다). 그리고 이번 파업이 지나면 의사들은 환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최선의 의료가 무엇인지 반드시 증명해야 할 것이다. 

납득할만한 설명이 없으면, 그저 더 큰 밥그릇을 달라고 칭얼거린 이기주의자로 내몰릴 가능성이 있다. 설명에 성공했어도 의사들은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특히 재정적인 이익을. 이번 처럼 의료의 공공성을 강조한 파업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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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공학의 응용

유전공학의 응용

NEJM 에 실린 논문인데, 유전자 조작으로 HIV 감염된 환자가 AIDS로 발전하는 것을 막는 치료법의 1상 시험입니다. 방법을 말하자면… 설명하기가 긴데… HIV가 감염시키는 세포는 백혈구 중에서도 CD4+ T-Cell이라는 종류입니다. 바이러스나 암세포 같은 상황에 대처하는 백혈구인데 HIV에 감염되면 이 세포만 죽어나가고 혈액 유닛 당 500개 이하까지 줄어들면 AIDS가 되는 거지요. 이번 임상 시험은 바이러스가 T-cell에 침입하는 경로인 CCR5라는 단백질을 만들지 못하도록 유전조작을 하고(물론 체외에서) 그렇게 만든 T-cell을 수혈하고 체내에 얼마나 머물러 있는지 확인해 본 것입니다. (반감기가 48주라고 하네요). 이렇게 T-cell이 체내에 머무를 수 있고, HIV에 감염되어 파괴되지 않는다면 수혈만으로 HIV 감염의 진행을 막을 수 있겠지요.

유전공학은 이렇게도 활용될 수 있네요.

http://www.nejm.org/doi/full/10.1056/NEJMoa1300662?af=R&rss=current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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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고

사이언스지의 유명한 NTSC 논문이 출판된지 10년이 거의 되었다. 온나라를 들뜨게 했던 ‘과학논문’, 

동료 중 이 사건을 제대로 분석해 보겠다는 이가 있으나, 과연 충실한 자료가 있을지 걱정될 정도로 빠르게 잊혀진 사건.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생명윤리를 한다는 사람 중에, 이 사건과 크든 작든 관련되지 않은 이도 없는 – 혹시 이러다가 집단 무의식 수준으로 가라앉는 것 아닐까?  

황우석 사건은 결국 개인의 일탈행위로 정리되는 분위기이지만 많은 문제가 숨어 있다. 몇 개만 적어보아도… 

1. 과학 대 산업

2. 의학 대 비의학

3. 종교 대 종교 

4. 과학연구의 자본화 

5. 과학연구의 비판능력 상실 

6. 언론과 과학자 

7. 과학의 자정능력 

같은 것들이 숨어 있는 종합선물세트다. 하나씩 다룰 수 있다면, 그렇게 한 1~2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는데… 

 

사전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결정서

연명의료결정 제도화와 관련하여 가장 곤란한 문제는 연명의료결정서(POLST)와 사전의료의향서(advance directive) 사이의 관련성 문제다. 무엇을 먼저할 것인가?

국내 의료윤리학자들 중에서는 AD가 너무 일반적인데다 작성하는 분위기를 신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의사가 직접 작성한 POLST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이런 태도가 조심스러운 입장일 수는 있겠으나 문제의 근본을 직시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환자에게 결정권을 주려하지 않는 우리 의료환경의 문제다. 환자가 쇠약해질 때까지 버려두었다가 환자가 실제로 결정하는 경우가 얼마나 적고 불완전하게 작성하는지 강조하는 태도가 문제의 근원인 것이다.

Nancy Berlinger에게 POLST와 AD에 관한 미국내 논의를 물어보았다. 그녀의 답변은 이렇다.

1.  미국의 생명윤리정책 연구자들은 POLST가 AD를 대체하거나 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2.  POLST와 관련하여 많은 정책 활동이 있지만 아직 AD가 확실한 정책으로 자리잡고 있다.
3.  POLST의 작성 목적은 AD의 내용을 확인하고 그것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그 다음 덧붙이는 이메일이 하나 더왔다.

AD의 문제는 POLST보다 구체적이지 않아서 치료방법들을 지시하기에 어렵다는 것.  AD와 POLST 모두 대리인(proxy)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발전해야 한다는 합의가 있다는 점.

우리나라 법은 이런 미국의 경험과 상관없이 만들어질지 몰라서 걱정이다. 스페인과 독일, 미국이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나라에서는 POLST로 대체해야 한다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